인간의 노동과 존재의 가치가 무너지고 부정당하게 되면
우리는 어떤 의미를 붙들고 살게 될까? 고상한 예술과 이상을 꿈꾸는 몽상가로서 유유자적하게 될까? 컴퓨터와 로봇이 노동을 대체하고, 의술과 생물학, 병리학의 발전으로 어쩌면 영원히 살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지는 몸뚱이를 갖게 되면, 인간은 그 무한성과 자유로움 속에서 어떤 것을 소중하게 간직하게 될까?
내가 알던 거의 모든 것들의 가치가 떨어지고, 흔해빠지게 되고, 손쉽게 대체 가능한 것이 되어간다. 생산적 노동이 어떤 것들이 남을지 궁금해지기까지 한다. 지식과 정보가 넘쳐나고, 힘들게 무엇을 일구거나 일해야 할 필요도 없고, 잘 아프지도 다치지도 않는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모든 혁신의 그림자 아래에 과거의 영광을 뒤로하고 사라지는 것들, 잊혀지는 것들, 의미없어지는 것들이 생겨나게 마련이다. 점점 더 가족의 가치를 드높이고, 자기 자신에 대해 집중하는 문화가 번성하는 까닭도, 더 이상 친족이나 지역 공동체가 유의미하지 않고, 신분이나 계급이라는 것의 특권도 희박해지기 때문이다. 과거에 중요했던 것들이 빛을 잃고 허무하게 바스라질때, 그 자리를 대신할 소중하고 유의미한 것을 찾지 못한 인간에겐 결국 ‘허무(Void)’만 남게 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