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와 미디어가 넘쳐나는 세상 속에 ‘참된 앎’이라는 게 더욱 어려운 물음이 되었다
AI 대화창에 막되먹은 질문을 던져도 찰떡같이 그럴싸한 답을 찾아주고, 필요한 정보를 요약해 떠먹여주기까지 하니, 깊이 생각하고 본질을 통찰하는 사고는 자꾸만 미뤄지고 덮혀져버린다. 게으름은 살아있는 생명체로서 본능에 가까운 것이어서인지, 행동에 더딘 만큼이나 생각을 안하려는 습성은 어쩔수가 없는 것인가 싶기도 하지만, 똑바로 정신을 차리고 핵심을 놓치지 않으려는 경각심을 유지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는 세상인 것 같다.
컴퓨터의 등장 이래로 서서히 진행되던 정보기술 혁명이 AI와 로봇의 본격적인 진화에 힘입어, 노동의 종말과 인간 세계의 무한 확장을 꿈꾸게까지 한다. 하지만, 글을 읽고 쓴다는 건 인간이 문명을 일으킨 가장 밑바탕이 되었던 힘인데, 정보기술이 발전되면서 인간의 고유한 사고 능력은 어쩌면 정체되거나 잃어버리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되기도 한다.
무언가를 기억하는 것이 지식의 근간처럼 여겨지던 시대도 있었고, 누군가의 총명함을 묘사할 때 “한번 본것을 결코 잊지 않는다”며 칭찬하던 기록들이 증명하듯, 정보를 기억하고 저장하고 필요할 때 꺼내어 쓸수 있는 건 가장 중요한 인지 능력 중 하나였던 게 지금까지의 인류역사였다. 하지만 정보의 저장과 검색, 인출 기능을 컴퓨터가 대신하기 시작해서, 이제는 AI가 기록할 필요나 기억하려 애쓸 필요를 못느끼게 되는 세상이 되었으니, 참된 앎은 기억과 무관한 것처럼 여겨지고, 통찰력과 판단력이 가장 중요한 인간의 지혜로 자리잡게 되는 것 같다.
어쩐 주제에 대한 글쓰기를 할 때도 마찬가지여서, 생각하는 바의 뼈대를 만들고 이를 AI에 적절한 프롬프팅(Prompting)과 함께 요청하면, 그럴듯하게 매끈하게 정돈된 꽤 긴 호흡의 글을 뚝딱하고 뽑아준다. ‘이런걸 그대로 포스팅을 해도 되나?’ 하는 생각도 안해본 바는 아니지만, 글의 주제와 구성 체계, 넣어야 할 핵심 생각은 뼈대를 갖춰서 넣어줘야 그래도 의미있는 글이 만들어지는 걸 보면서, AI의 도움을 받아 완성된 글을 포스팅하는데 대해 나름의 확고한 입장을 갖게 되었다. 글을 쓰는데 있어서 무엇을, 왜, 어떤 관점에서 바라볼 것인가, 그리고 그 안에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무엇인가를 결정하는 것이 가장 본질적인 인간의 사고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어쩌면 AI는 새로운 글쓰기의 도구가 된 것인지 모른다. 한 문장 한 문장을 직접 타이핑하고 적어내려가야 온전한 창작이라고 주장하는 근본주의자들도 있을지 모르지만, 손으로 꾹꾹 눌러적은 원고만이 진짜 인간의 글이라고 주장하던 글쟁이들의 울부짖음을 아직도 기억하는 입장에서는, 그 외침의 뜻은 존중하지만 타자기에서 워드프로세서(예전엔 이런 이름으로 불리던 기계가 있엇다!)로, 워드프로세서에서 컴퓨터 글 편집기(한글, 워드, 훈민정음?!)로 넘어가는 흐름을 되돌릴수 없듯, 아마도 글쓰기를 AI가 다듬고 완성시키는 과정을 그저 자연스러운 글쓰기의 일부로 여기는 시대로 나아가가는 것도 피할수 없는 흐름이라고 보인다.
무엇인가의 쓰임새를 결정하고, 자원과 우선순위를 배정하는 판단을 누가, 어떻게 할것인가가 참된 앎의 본질로 등장하는 시대인 것 같다. 전문가들은 비판적 사고 (Critical Thinking)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생각하는 힘은 AI의 등장 전에도 중요한 역량이었지만 누구나 가질수 있는 힘은 아니었다. 하지만 AI의 기술혁신으로 정보의 접근성이 높아지고 정보를 가공하고 정제하는 도구들이 발달하게 되면, 올바른 판단과 합당한 결정을 할수 있는 역량은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